<'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부산 을숙도 선언>
서울서 부산까지 한강~낙동강 순례를 마치며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종교인 순례단은 장장 50일 째 1,500리 길을 걷고 걸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봄 마중을 왔습니다.
지난 2월12일 김포 애기봉전망대에서 출발하던 첫날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 천막 잠을 자며 한강과 남한강을 모시기 시작해 문경 새재를 넘어 민족의 젖줄인 낙동강을 모시며 참회의 기도를 했습니다.
오는 봄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한 발 또 한 발 유장한 강물의 속도로 날마다 3만보를 걷다보니 어느새 어절씨구 만화방창의 봄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순례단은 평일에는 50명 이상, 주말에는 수백 명의 순례 참가자들과 함께 강변길을 걸어서 왔습니다. 연인원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만나 위기에 처한 생명의 강을 위해 참회와 성찰의 기도를 하며 ‘이명박표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라는 ‘유령’의 실체를 두 눈 똑똑히 보았습니다.
우리 순례단이 가는 길은 생명과 평화의 길이요, 상생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운하 구상은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한반도 대재앙’이자 누대에 걸쳐 흐르는 ‘죽음의 대운구 행렬’일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고 또 절감했습니다.
한강과 낙동강을 가까이 모시며 걸어보니 대운하 구상은 현장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은 단지 몇 장의 종이쪽지에 불과한 계획서일 뿐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몇몇 위정자들의 정치적 노림수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찬성률이 매우 높다고 알려진 여주, 충주, 문경, 구미 등지를 지날 때는 내심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그것은 단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경기도 여주의 중앙 시장에서는 풍물패들이 환영을 해주었고, 문경의 어느 마을 이장은 “500년 가까이 된 마을이 사라지게 되었다”며 눈물의 호소를 했습니다. 그 어느 지역의 주민들과도 사소한 마찰이나 언성 한 번 높이지 않았으며, 도리어 서로가 손을 흔들어주는 등 환대를 받았습니다.
문경 새재에서는 250여명의 개신교 목회자들과 신도들이 모여 산상기도회를 열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특별종립선원인 봉암사는 속세의 일로는 사상 처음으로 산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백두대간의 양쪽에서 열린 산상기도회와 2,500여명의 스님과 불제자들이 모인 봉암사 대법회는 ‘산자 분수령’이라는 옛말처럼 마침내 ‘대운하 백지화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구미에서는 500여명의 전국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축전을 열어주었고, 경남 창녕군 남지에서는 원불교 교무 등 교도들이 모여 기도법회를 봉행했으며, 청도 운문사의 강사 스님과 학인 스님 200여명이 동참해 신심어린 발원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천주교 미사가 열리듯이 그동안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불교 등 각 종교계는 생명의 강을 모시며 간절한 참회의 기도를 함께 해왔습니다.
우리 순례단은 50일 동안 걷고 걸으며 대운하의 허구를 온몸으로 확인하였으며, 더불어 세계적인 갯벌인 새만금을 매립하고 철새도래지인 주남저수지 등을 파괴하는 이 나라에서 오는 10월 람사르 국제회의가 열리는 등 참으로 역설적인 모순을 가슴 아프게 확인했습니다.
대운하 구상이 일종의 ‘정치적 사기’인 것처럼, 람사르 국제회의마저 습지보전이 아니라 ‘관광개발 회의’가 아닌지 참담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단한 순례의 길 위에서 부활절을 맞았으며, 4대 강을 모시는 길 위에서 다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걷다가 맑은 강물을 만날 때는 우리 순례단의 온몸에도 생기가 돌았고, 골재 채취 등으로 내장이 파헤쳐지거나 각종 폐수로 시커멓게 죽어가는 낙동강과 마주칠 때는 꼭 그만큼 온몸이 아팠으며, 남몰래 자주 눈물을 흘려야만 했습니다.
단장인 이필완 목사는 몸살과 독감으로 강둑길에서 쓰러진 뒤 깨어나자마자 엉엉 울었고, 수경 스님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성당의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남몰래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 잘 버티던 박남준 시인도 부산에 들어오자마자 몸살감기로 잠시 입원을 해야 했으며, 순례단 모두 폐수가 흐르는 강물처럼 허위허위 지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100일 기도순례는 이제 다시 시작일 뿐입니다. 부산 을숙도를 중간 기착지로 삼아 영산강과 금강을 모시고, 다시 남한강과 한강을 모시며 서울로 향할 것입니다.
우리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각 종교계의 성직자들뿐만이 아니라 운하백지화 국민행동 등의 모든 단체와 연대할 것이며, 전국의 문화예술인들과 운하 반대를 선언한 교수들, 전세계의 전문가들과 해외동포 등과도 긴밀히 연대해 범국민적이고도 범지구적인 생명평화 운동으로 확산시켜나갈 것입니다.
우리 순례단은 바로 오늘 이곳 낙동강 하구인 부산의 을숙도에서 이명박 대통령님께 간청을 드립니다. 이미 한나라당 스스로가 총선 공약에서 제외했듯이 범국민적 심판을 받은 ‘한반도 대운하 구상’의 전면 백지화를 간절히 요구합니다.
아울러 70년대 이후 산업화의 희생양이 된 낙동강 등 4대 강에게도 마침내 부활의 전환기가 왔음을 선언하며, 새 정부와 한나라당은 미몽과 옹고집에서 벗어나 민족의 젖줄이자 생명의 근원인 강을 맑고 푸르게 살리는 백년지대계부터 온 국민들과 함께 차근차근 마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의 순례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생명평화의 세상을 현실화하면서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갈 것이며, 대운하 전면 백지화의 그날이 올 때까지, 그리고 생명의 젖줄인 강과 산과 바다가 맑고 푸르게 되살아날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고맙고도 고맙습니다.
2008년 4월1일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