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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차 참가기)
90일차 순례는 여주군 점동면 삼합2리 창남나루터에서 시작 하였다.
강원도와 충청남도, 경기도 이렇게 3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고, 강원도에서 내려오는 섬강과 남한강, 청미천 세 물이 합쳐지는 곳이니 삼합리라고 한다고 했다.

아침의 창남 나루터
남한강을 따라서 조금 걸으니 청미천이 나타났다. 강에 물은 말랐으나. 자갈과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모래와 자갈은 모두 공사판으로 팔려 나간 줄 알았는데, 그 위를 걸으니 마치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모래 위에는 사람의 흔적보다도 고라니들의 발자국이 선명 했다.

청미천으로 내려서는 순례단.
청미천을 넘어서 장안리의 홍일선 시인의 집에 들렀다. 홍시인과 몇몇 지인이 떡과 막걸리, 김치와 나물을 마련 해 놓고 순례단을 맞이 하였다. 점토 벽돌로 지은 한옥 집에서 홍시인은 농사를 지으면서 자족하며 지내는 것 같다. 그러나 운하가 들어서면 홍 시인이 애써 가꾼 이 집에서 떠나야 할 것이다.
나도 홍시인처럼 농사를 지으며 전원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 해 봤다.
우선 해 뜨기부터 시작하여 해 질 때까지의 농부의 근면함을 흉내 낼 수 없다. 그리고 어느 것이 어느 식물의 씨앗인지도 모른다. 식물이 싹이 나고 자라고 수확을 할 수 있을 때까지의 생명의 힘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다. 정말로 자급 자족 형 인간으로는 나는 아무런 쓸 곳이 없다.
건축업을 해 왔으니, 누군가가 집을 짓는 다면 도울 수가 있는데, 그 것도 목수나 미장이처럼 실제 땀을 흘려 뭔가를 만들어 내는 행위자가 아니고, 입으로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일하는 사람에게 거치장스러운 사람이 될 뿐이다. 결국 나는 별 쓸모 없는 사람인 셈이다.

홍시인 댁의 처마에는
김시인의 집을 나와 아홉사리 고갯길을 넘었다.
여주 환경 연합에서 최근에 힘들여 발견한 길인데 일반에 공개하면 훼손 될까 염려하여 외부인에게 공개 하지 않고, 이번 순례단에게만 공개 하였단다. 길 오른 쪽에는 절벽이고 그 아래 남한강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유원사 내려가는 공비들이 다녔다던 길보다도 좁고 위태로웠다. 그래서 주변의 뛰어난 경치를 즐길만한 여유가 없었다.

아홉사리에서
아홉사리를 넘어 흔암리 선사 유적지에서 점심을 먹고, 점심 후에는 드림 실험교회 주최로 4개 종단이 서로 맞물려 가는 진귀한 예배를 보았다. 예배를 진행한 김민해목사는 순서 말미마다 박수치는 예배는 처음이라 했지만, 도법 스님이 성서를 읽고 그 해설을 하고, 원불교 교무가 불경을 읽고 법문을 하는,그런 예배는 처음 이었다.
이한주 목사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참회하는 사람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데 후회하는 사람은 계속 그 잘못을 되풀이 한다고 했다. 저 강으로 돌아와 참회 하며 위기에 처한 생명의 어머니를 모시지 않고 어머니를 외면하고 매일 경제적인 부의 증가에만 혈안이 된 우리 모두가 후레자식이라고 했다
끝으로 김규봉 신부께서 천주교식으로 강복을 내리셨다.
선사 유적지에서 영동 고속도로의 폐 남한강 다리 위에서 강을 쳐다 보았다. 강은 유유히 아무런 일도 없을 듯이 흐르고 있다. 몇년 후에도 저 강이 지금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기를 빌며, 다시 돌아서 아스팔트 위를 걸었다. 날은 덥고 길 위는 찜통처럼 뜨거웠다. 90일간을 걸어 온 순례단의 고충이 어떨지 이해가 된다. 우먼리 나루터를 지나 중간에서 한번 더 쉰 뒤에 이호 다리 아래에서 오늘 일정을 모두 끝냈다.
진행팀에서 내어준 버스에 탑승하여 아침 출발점 창남나루터로 되돌아 왔다.
강 서쪽으로는 해가 지려 하고, 아침에 낚시대를 드리었던 사람도 가고 없고 한적한데, 가끔 물고기만 강을 차고 튀어 올라 조용함을 깨뜨렸다.
저 아름다운 강에 MB는 기필코 삽을 들이대고 말 것인데, 나는 저 강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자문해 본다. 
해지는 창남 나루
순례단에 다섯 번 합류한 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인가?
친구들이 운하를 찬성 한다면 그들에게 운하의 부당성을 열심히 설득한 적이 있던가? 그저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구나 하며 아무런 말 없이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그자리를 지키다 일어서고 말기를 되풀이 하였다.
매일 맘 속으로만 운하를 반대하고, 운하를 계획한 자들을 증오하면서도, 운하를 찬성 하는 사람을 만나면 적당히 피해 버리거나 속으로 미워하며 지내지 않았는가?
나 역시 내 일상의 번민은 집의 크기, 자동차, 돈에 한정되어 있었고, 누군가 남이 이 잘못된 운하를 당연히 막아 주리라는 생각으로 살아 온 것이다.
강가에 앉아, 몸은 혼자 제 먹을 식량을 마련하기에도 게으르고, 마음은 운하를 막기에 겁쟁이이니, 이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해가 넘어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080512 신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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