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반대! 시인 203인의 특별 공동시집
『그냥 놔두라 쓰라린 백년소원 이것이다』마침내 출간!
대운하 반대와 생명의 어머니이신 강을 모시기 위한 시인 203인의 특별 공동시집이 마침내 출간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하는 김규동, 고은, 유안진, 정희성, 강은교 등 시인 203명의 신작시와 이철수, 홍성담, 류연복, 여태명 등 화가, 서예가 11인의 작품을 한데 모은 이 공동시집은 한국의 문화예술인 214명이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사업에 일대 반기를 들고, 작품을 통해 대국민 호소에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도서출판 화남에서『그냥 놔두라 쓰라린 백년소원 이것이다』(크라운판, 368쪽, 값1만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특별 공동시집은 세계문학사상 유례없는 한국 시인들의 행동시학이며, 생명의 찬연한 풍경과 기억을 좇는 시인들의 푸른 언어로서 문단 안팎의 주목을 요하고 있다.
생명의 어머니이신 강을 모시기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연대(공동집행위원장 남요원, 도종환, 홍일선)의 책임편집으로 출간된 이 시집은 이 단체 출범 후 불과 두 달 만에 시인 203명이 <한반도 대운하 반대>라는 단일 주제로 공동시집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사상 경이로운 사건의 하나로 평가된다.
이명박 정부의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이미 공공연하게“이명박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대운하는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그 추진의지를 천명한 바 있으며, 청와대나 정부 부처에 이미 대운하 관련 추진기획단이 가동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에 <생명의 어머니이신 강을 살리기 위한 문화예술인 공동연대>에서는 대운하 추진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행보에 분명한 목소리로 <아니오>라는 뜻을 전달하면서 작품을 통해 대국민적 호소에 나선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은 오랫동안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존중해왔다. 그러하기에 들판의 나무도 그저 목재가 아니며, 강도 그저 흐르는 물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상징이었고, 때론 아픈 시대의 은유였다. 시인들은 이 땅의 대자연을 통해 지상 위에 머물다 간 수많은 영혼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말씀을 들었다. 한반도의 강은 시가 되었고, 그림이 되었고, 춤이 되었다. 그래서 길옆의 작은 풀밭도, 시골의 작은 냇물도 그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시인들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었다.
문화예술인들은 한 인간으로서, 또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주체로서 뿐만 아니라 아직 다가가지 못한 오래된 미래를 그리는 사람으로서 저 강의 마음들이 무참하게 훼손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기에 대운하 반대라는 뜻을 모으게 된 것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사업 추진 중단을 희망하는 경향 각지 시인들의 뜨거운 염원이 담긴 이 특별 공동시집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운하 반대 시인 203인의 특별공동시집『그냥 놔두라 쓰라린 백년소원 이것이다』책 출간 의미
미학적 행동주의의 소산─
한반도 대운하 반대 203인 공동시집
김규동, 고은, 민영, 유안진, 정희성, 이성부, 강은교, 노향림, 유재영, 김영재, 홍일선, 백무산, 장석주, 박남준, 서정윤, 이재무, 이원규, 손택수, 박후기 시인 등 한국시단의 원로 및 중견, 청년시인에 이르기까지 무려 203명에 이르는 시인들이 함게 참여한 이 공동시집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우리사회의 도처에서 전개되고 있는 반생태적이고, 평화파괴적인 재난에 가까운 현실에 대한 한국 시인들의 미학적 행동주의의 소산으로 우리들의 주목을 요하고 있다.
대운하 사업─ 생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기술폭력의 야만성
한반도의 생태지속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적 동의에 반하는 아주 위험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한반도의 총체적인 국토변형과 파괴를 구조화해낼 것이 분명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함으로써, 우리들의 삶터에 대한 총체적인 파괴를 자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인류라는 종의 오만함이 한국의 개발독재라는 낡은 버전으로 재현된 결과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는 것과 같이 이 대토목공사가 실제로 진행될 경우 한반도의 생태적 평형상태는 필연적으로 붕괴하게 된다. 이러한 예상되는 위협과 함께, 이것은 윤리적으로도 아주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인류라는 공동체를 그 험난함 속에서도 지속시켜 왔던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 대한 윤리를 급진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생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기술폭력의 야만성을 전율 속에서 보여준다.
생태 평화주의자인 시인 203명의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집단경고
이러한 참담한 현실에 대해 시인들이 침묵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인들은 그 존재가 근원적으로 인류의 유년시절에 가 닿아있고, 생명의 질서를 그 자신의 자아 안에 체화하고 있는 존재다. 시적 수사학의 기본문법이라고 할 수 있는 은유가 타자와 세계를 자아화하는 것, 인간과 자연을 그 상호의존적인 교감의 존재로 파악하는 것에서 이것은 잘 나타난다.
때문에 시인들은 그 시작행위 자체에 대한 정교한 자의식이 부재할 때라도, 근원적으로는 생태평화주의자이며 물질주의로 표상되는 욕망의 무한항진이 가져올 파국에 대한 영원한 경고자, 즉 신화 속의 카산드라처럼 존재해왔다. 비록 오늘의 시인들이 이 물질주의와 자연의 파괴를 근거로 한 문명의 배외자처럼 보일지라도, 바로 그러한 배제된 상황이 역설적으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 전체에 대한 탁월한 관찰자, 비판자, 예언적 감성의 소유자로 기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세계문학사적으로 유례없는 한국 시인들의 행동시학
오늘 한국의 시인 203명이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경고를 집단화하는 것은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브레이크를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 파국적 상황에 대한 위기의식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사태는 생명의 근원적 기초인 ‘어머니 강’에 대한 파괴가 자연의 파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근원적인 교감을 통해서만 신비로운 정신의 균형을 취할 수 있었던 인간성의 완전한 파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율적 상황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에서 표출된 것이라 보아야 한다.
이 공동시집에서 시인들이 생태평화주의에 대한 풍부한 전망과 물질주의로 표상되는 인간의 탐욕에 대해 날선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때문에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대한 시인들의 집단적인 항의는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대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축소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명사적 불안에서 출발하여, 기술주의에 근거하여 지구적인 수준에서 파괴를 양식화하고 체계화하는 ‘문명론’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행동시학인 것이다. 한국의 시인들이 집단적으로 체화해나가고 있는 이러한 ‘행동시학’은 세계문학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인 것인데, 이는 그만큼 한국의 시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예일 것이다.
보라, 생명의 찬연한 풍경과 기억을 좇는
이땅의 시인들의 푸른 언어를!
이 공동시집에 묶여 있는 203편의 시들은 그런 점에서 먼저 ‘고유명사’를 구원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시인들은 일반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과 자연의 그 드넓은 생명의 다채로운 활력과 고유성, 그것이 거대한 생명의 교감적 순환고리 속에서, 서로 간에 의존하고 협동하면서 뿜어내는 역동적인 생성과 순환, 소멸과 재생의 거대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음을 명료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이 시집은 오늘의 문명적 위기상황에 대한 시인들의 절박한 고통이 뿜어낸 행동시학적 발신음이다. 시인들의 행동주의는 그것이 극단의 상황에 처해 있을 때라도, 교감으로 충만한 아름다움에 대한 신념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들에서 시인들이 임박해 있는 생태적 재난 앞에서도, 언어의 칼날을 날카롭게 드러내기보다는 생명의 그 찬연한 풍경과 기억과 감각적인 자기장을 유연하게 증폭시키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시적 싸움의 방식에서조차 교감의 생명질서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읽혀진다.
물론 시인들은 이 시집의 도처에서 임박한 어머니 자연의 복수에 대해, 마치 복화술사처럼 인간세계를 향해 경고하는 일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조차도 오늘의 생태평화를 압살하려는 세력에 대한 ‘저주’라기보다는, 그들의 회심과 각성을 요청하는 ‘명백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시인들은 유장하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서, 마치 무의식의 압축파일처럼 존재하는 생명과의 친화력으로 충만했던 과거를 푸르게 게워낸다. 시적 은유를 통해 기술주의적 폭력으로 만연해 있는 이 세계를 즉각적으로 구원하는 일은 지난한 것이겠지만, 한때 이 세계는 친화력으로 충만했던 세계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환기시킴으로써, 시인은 기억의 치매상태로 전락하고 있는 기술주의 문명의 잔혹함을 스스로 드러나게 한다. 물론 한 줌의 언어가 정지를 모르는 자본의 폭력적인 속도를 거스르고, 물질주의로 충만한 인간이 탐욕을 일거에 제거할 수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시 쓰기란 결국 그런 불가능의 편에서, 가청주파수 너머에서 들리는 자연의 거대한 신음소리를 민감하게 대변하고, 그것을 저 개념적 추상에 갇혀 있는 세속세계를 향해 의연하게 번역하고 증폭시키는 행위가 아닐까.
탐욕에 눈멀고, 추상에 귀 멀어버린 가감 없는 기술폭력의 세계를 향하여 절규하는 시인들의 푸른 언어들은 표면적으로는 무력해 보이지만, 그것은 부드럽고 장엄하게 메마른 폭력세계의 중심에 지금도 구멍을 뚫고 있는 것이다. 이 ‘푸르른 불온함’ 앞에서는 단단한 모든 것들을 대기 중으로 녹여버리던 그 탐욕의 물질주의가 도리어 공기 중으로 휘발될 운명에 처해 있다. 그것이 시인들의 생태평화주의에 내포된 마술적 초월성이다.
※ 이 공동시집의 출간 의미에 대해서는 이 책의 말미에 실린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해설 <행동시학과 생태평화주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